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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심각했던 국제금융위기 TOP 6 - haruharu88 -

by 나혼자살아보세 2020. 6. 6.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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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는 여러차례 있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엔 IMF라는 큰 경제위기가 왔었죠. 외환위기였지만 외환위기는 곧 금융위기이기도합니다. 기축통화가 달러인이상 원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큰 자금이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2006년 주택시장의 붕괴를 겪었고 경제적으로 체감을 했을것입니다. 미국이 기침을하면 주변국가들 특히 신흥국들은 몸살로 앓아눕습니다. 

 

 

 

1. 1772년 신용위기

 

 

이 신용위기는 런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다른나라들에게도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1760년대 중반 대영제국은 식민지와 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이것은 많은 영국 은행들에 의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막대한 신용거래가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축제는 1772년 영국은행 4곳의 고객이었던 알렉산더 포디스(Alexander Fordyce)가 빚을 갚기위해 프랑스로 도주하면서 끝납니다. 채권단들은 영국은행들 앞에서 긴 줄을 서서 즉각적인 현금 인출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뉴스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영국 은행들은 공황을 맞이합니다. 뒤이어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유럽의 여러나라들, 그리고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까지 위기가 확산됩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위기의 경제적 파장이 결국엔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였다고 주장합니다.

 

 

 

2. 1929-3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미국에서 1929년부터 시작한 대공황은 20세기 최악의 금융위기와 최악의 경제 재앙이었습니다. 대공황은 현대 세계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긴 경제 불황입니다. 대공황 이전에 1920~21년 짧은 불황을 겪은 미국은 증시가 50%가까이 하락하고 기업이익은 90%이상 감소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1929년까지 계속 성장하였고, 투자자들은 미국의 증시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투기 광풍이 시작된겁니다. 1929년 대공황이전까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가 5년만에 500% 상승을 합니다. 결국 1929년 월가가 붕괴되고 후에 미국 정부의 부실한 정책결정으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공황은 10년동안 지속되었고, 특히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대규모 소득 손실, 기록적인 실업률, 생산량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933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실업률이 거의 25%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허버트 클라크 후버(Herbert Clark Hoover) 미국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를 실시하게 됩니다. 일자리를 유지시키고 값싼 외국 노동자들의 유입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국제무역은 심각하게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전 세계적으로도 경제상황이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인위적으로 물가와 임금을 조절하고, 세계무역도 단절되면서 결국 미국경제는 더욱 더 깊은 불황의 길로 가게됩니다. 이후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Franklin Delano Roosevelt)은 뉴딜정책을 실시하게 됩니다.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독점주의를 금지했습니다. 과잉 농작물의 생산물을 줄이도록 했으며, 연방세를 크게 늘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루즈벨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것들이 대공황을 극복하게 하는 결정적이었다는것에 대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 대통령이었던 후버 대통령과 크게 벗어난것이 없는 정책이라는 평가에서입니다.

1940년 800만명이었던 실업률은 1943년 100만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1620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민간 부문에서는 전쟁 기간 동안 오히려 실질 실업률이 증가했습니다. 결국엔 전쟁으로 인해서 대공황을 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국제 무역 통로를 열게되었고, 가격과 임금 통제를 역전시켰습니다. 정부의 저렴한 생산품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그 수요는 엄청난 재정 부양책을 만들어냅니다. 이후 다시 미국의 주식시장은 몇 년만에 강세로 돌아서게 됩니다.

 

 

3. 1973년 OPEC 오일쇼크(Oil Shock)

 

 

이 위기는 아랍국가들로 구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회원국들이 제 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미국이 이스라엘 무기 공급을 보낸것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에 대한 보복을 결정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OPEC회원국들은 오일을 embargo 즉 금수(禁輸)조치를 선언하게됩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한 원유 수출 금지였습니다. 갑자기 중단된 원유수출금지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유가상승을 초래했고,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이 경제위기를 맞이하게됩니다. 유가상승의 결과로 아주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오게되자 경제학자들은 이 시기를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생산량이 다시 회복되고 인플레이션 전 단계까지 가는데 몇 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4.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Asia Financial Crisis)

 

 

이때 우리가 잘 아는 1997년 대한민국에서 IMF가 터진 해 입니다. 이 위기는 처음에 1997년 태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나머지 지역과 교역 상대국으로 빠르게 확산하게 됩니다. 당시 투자자본이 선진국에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한국의 동아시아 경제로 흘러가면서 낙관주의가 만연했습니다. 때문에 신용이 과도하게 연장되고, 부채가 너무 많이 쌓이는 결과는 낳게됩니다. 1997년 7월에 태국정부는 외화자원의 부족을 이유로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해온 미국 달러에 대한 고정 환율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는 아시아 금융시장에 공황을 불러 일으켰고 수십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동아시아 시장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아시아 정부의 파산 가능성에 대해서 경계를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금융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금융위기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립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들 국가들이 채무 불이행을 피할 수 있도록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경제에 대한 구제금융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개입하게 됩니다. 이때 한국은 금모으기 운동 등 국민들의 경제극복의지를 보여주며 상대적으로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비해서 빠르게 회복 할 수 있었습니다. 

 

 

 

5. IT 버블(Dotcom Bubble) 

 

IT버블(닷컴버블)이라고 불리는것은 1990년대 말 미국 주식 강세장 시절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열기로 미국의 기술주 주가가 급상승한 것입니다. 닷컴버블동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995~2000년 사이에 1000이하에서 5000이상 급상승하면서 주식 시장의 가치는 미친듯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과 2002년에 주식시장이 약세장으로 진입하면서 닷컴버블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합니다. 1995~2000년 사이에 5배나 올랐던 나스닥지수는 2000년 3월 10일에 최고점인 5048.62를 찍고 2002년 10월 4일에 1139.90까지 하락했습니다. 이때 최고점인 5048.62 기준으로 하락폭은 76.81%라는 어마어마한 낙폭을 보여줬습니다. 나스닥이 다시 2000년 최고점을 찍은 5048.62의 고점을 뚫을때까지 무려 15년이 걸린 2015년 4월 23일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IT기업들의 빠른 성장으로 빠르게 수익을 실현할거라 생각하고 투자하였지만, 당시 수많은 IT기업들 중에서 살아남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기억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때 빠르게 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었던 IT창업자들은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 과한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기술도 없는 회사들이 경쟁업체들과의 차별화되는 전략을 위해서 기술적인 개발보다는 마케팅비용으로 많은 돈을 썼습니다. 어떤 스타트업은 예산의 90%를 광고비로 지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과열된 시장이었습니다. 미래는 어떨지 모르지만 마치 지금의 전자화폐 혹은 암호화폐 시장을 보는듯합니다.

 

 

 

 

6. 2007-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subprime mortgage crisis) 

 

 


2007-08년에 있었던 경제침체를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전 세계의 금융시장은 큰 혼란을 겪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프라임 모기지 등급보다 금리가 높았습니다. 또한 변동금리였으며,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제공이 되는 주택담보대출이었습니다. 많은 대출자들이 소득도 없고, 직업도 없고, 자산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여기서 유래한 약어인 NINJA 대출입니다. 서브프라임 등급은 계약금이 필요없는 상태에서 발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소득증빙도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의 주택거품이 붕괴되고 세계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가(Lehman Brothers)가 파산하게 되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파산 당시 부채규모는 무려 6130억 달러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몰락과 파생상품 손실이 원인이었습니다. 많은 주요 금융 기관과 기업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전례 없는 규모의 정부 구제 금융을 요구하게 됩니다. 수십억 달러와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으며, 회복하는데에 엄청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많은 금융, 외환위기를 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것 같습니다. 

경제위기가 터지기전에는 큰 상승을 동반한다는것과 그 여파는 짧게는 몇년에서 길게는 몇십년까지 크게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것입니다. 즉, 회복하는 시간이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많이 걸린다는것이죠. 현재 우리는 코로나사태로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이 많은 재정정책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시장을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과열된 시장의 끝은 폭락이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증시가 흘러갈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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